변하는 명절 음식, 시장에서 만난 오늘의 명절 풍경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사람들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고, 상인들은 전이며 나물이며 떡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오고, 갓 부쳐낸 전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가 묵직했을 텐데,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명절 음식도 먹을 만큼 조금씩, 여러 가지를 골라 사는 모습 이 자연스러워졌다. 명절이면 온 집안이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시절 어릴 적 명절을 떠올리면 음식 냄새부터 생각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장을 보셨다. 쌀이며 고기며 생선이며 과일을 사고, 커다란 장바구니에는 이것저것 담을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시면 본격적인 명절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 큰 대야에는 불린 고사리와 시금치, 도라지가 담겨 있었고, 부엌 한쪽에는 송편이나 떡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전 부치는 날 이었다. 동태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동그랑땡을 빚고, 호박과 두부도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직 손대지 마라. 차례상에 올릴 거다."라고 하셨지만, 아이들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잘 익은 전 하나를 슬쩍 집어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전 한 조각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음식 자체의 맛보다도 명절이라는 특별한 날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 가보니 달라진 명절 풍경 요즘 시장에 가보면 명절 음식이 아주 다양하다.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호박전, 산적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살수대첩의 숨겨진 주인공, 을지문덕 장군의 기막힌 심리전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1. 지혜로 수나라 장수를 희롱한 '일곱 번의 패배'


살수대첩의 대승은 을지문덕 장군의 치밀한 유인 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수나라의 정예 별동대 30만 5천 명이 압록강을 건너 진격했을 때, 을지문덕은 이들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 싸우는 척, 지는 척: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를 평양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하루에도 무려 일곱 번을 싸우는 척하며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 적의 심리를 이용: 수나라 장수들은 "고구려의 대장군이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계속 지는군!"이라며 자만심에 빠졌고, 승리의 기세를 놓칠까 봐 지친 몸을 이끌고 허겁지겁 고구려군을 추격했습니다.
  • 결과: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군을 쫓아가느라 보급로가 길어지고 군량은 고갈되었으며, 병사들은 극도로 지쳤습니다. 을지문덕은 일부러 싸움에서 져주면서 적의 전투력을 스스로 소모시키는 고도의 심리전과 체력 소모전을 펼친 것입니다.

이 **'일곱 번의 작전상 후퇴'**는 당시 수나라의 오만함과 을지문덕의 지혜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화로 꼽힙니다.





2. '살수(청천강)'의 깊이를 속인 스님들 전설


살수대첩의 핵심은 수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는 순간 기습 공격을 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수나라 군대를 속이기 위해 을지문덕이 펼쳤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 스님으로 변장한 고구려군: 살수(청천강)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수나라 군대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고구려 병사 일곱 명이 머리를 깎고 스님으로 변장하여 바지를 걷어 올린 채 강을 건너는 모습을 수군에게 일부러 노출했습니다.
  • 여울의 착각: 수나라 군사들은 "스님들이 바지를 걷고 저렇게 쉽게 건너는 걸 보니, 저곳은 분명 강물이 얕은 여울이겠구나!"라고 착각했습니다.
  • 함정의 완성: 수군은 그곳을 안전한 도하 지점이라 믿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을지문덕이 미리 수심을 측정하고 위장하여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숨겨놓았던 둑이 터지며 엄청난 물이 쏟아져 수많은 병사가 급류에 휩쓸려 죽거나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전설은 을지문덕의 기발한 지혜가 단순한 병법을 넘어 백성들까지 동원하여 심리적 함정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 흥미로운 여담: 살수대첩 이후의 행적은?


살수대첩 이후 을지문덕의 기록은 역사서에서 갑자기 사라집니다.

  • 의문의 실종: 살수대첩이라는 엄청난 승리를 이끈 영웅의 행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삼국사기》에도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다양한 추측: 일부 학계나 야사에서는 살수대첩 2년 뒤, 수나라가 마지막으로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강화(講和)를 맺는 문제로 왕족 고건무(훗날 영류왕) 등 강경파와 논쟁을 벌인 뒤, 정계에서 물러났거나 갑자기 사망했다는 등의 추측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을지문덕 장군은 '여수장우중문시'처럼 지혜를 통해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낸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