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명절 음식, 시장에서 만난 오늘의 명절 풍경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사람들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고, 상인들은 전이며 나물이며 떡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오고, 갓 부쳐낸 전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가 묵직했을 텐데,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명절 음식도 먹을 만큼 조금씩, 여러 가지를 골라 사는 모습 이 자연스러워졌다. 명절이면 온 집안이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시절 어릴 적 명절을 떠올리면 음식 냄새부터 생각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장을 보셨다. 쌀이며 고기며 생선이며 과일을 사고, 커다란 장바구니에는 이것저것 담을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시면 본격적인 명절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 큰 대야에는 불린 고사리와 시금치, 도라지가 담겨 있었고, 부엌 한쪽에는 송편이나 떡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전 부치는 날 이었다. 동태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동그랑땡을 빚고, 호박과 두부도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직 손대지 마라. 차례상에 올릴 거다."라고 하셨지만, 아이들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잘 익은 전 하나를 슬쩍 집어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전 한 조각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음식 자체의 맛보다도 명절이라는 특별한 날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 가보니 달라진 명절 풍경 요즘 시장에 가보면 명절 음식이 아주 다양하다.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호박전, 산적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그 시절 아버지들의 엇갈린 두 얼굴: 권위와 고뇌

 70~80년대의 아버지들은 많은 이들에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권위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보이곤 했죠. 하지만 그들의 이면에는 짠하고 슬픈 고뇌가 함께 있었습니다. 권위의 그늘 아래 감춰졌던 그 시절 아버지들의 두 얼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 권위 뒤에 숨겨진 고뇌

당시 아버지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유일한' 책임자라는 사회적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가족의 생존이 오롯이 자신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부담감은 아버지들을 더욱 엄격하고 권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위신을 세우고, 가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권위적인 태도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권위적인 모습 뒤에는 남에게 쉽게 터놓지 못하는 고통과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 생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아버지들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죠.


폭력과 술 뒤에 숨겨진 절망감

일부 아버지들이 가정폭력이나 술에 의존했던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면, 당시 아버지들이 느꼈던 절망감과 무력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된 노동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뿐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었고, 결국 가장으로서의 무력감을 술이나 폭력으로 표출하게 된 것이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된 방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들의 행동을 용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겪었던 고통과 억압된 감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는 있을 겁니다.


짠하고 슬픈 이름, 아버지

오늘날의 우리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의 온갖 압박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가장'이라는 짠하고 슬픈 이름을 남겼습니다. 

엄격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그들의 고뇌를 부모가 되고 가장이 되어보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