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사람들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고, 상인들은 전이며 나물이며 떡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는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오고, 갓 부쳐낸 전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가 묵직했을 텐데,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명절 음식도 먹을 만큼 조금씩, 여러 가지를 골라 사는 모습 이 자연스러워졌다. 명절이면 온 집안이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시절 어릴 적 명절을 떠올리면 음식 냄새부터 생각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장을 보셨다. 쌀이며 고기며 생선이며 과일을 사고, 커다란 장바구니에는 이것저것 담을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시면 본격적인 명절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 큰 대야에는 불린 고사리와 시금치, 도라지가 담겨 있었고, 부엌 한쪽에는 송편이나 떡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전 부치는 날 이었다. 동태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히고, 동그랑땡을 빚고, 호박과 두부도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직 손대지 마라. 차례상에 올릴 거다."라고 하셨지만, 아이들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잘 익은 전 하나를 슬쩍 집어 먹곤 했다. 그때 먹었던 전 한 조각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음식 자체의 맛보다도 명절이라는 특별한 날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 가보니 달라진 명절 풍경 요즘 시장에 가보면 명절 음식이 아주 다양하다.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호박전, 산적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나의 십자가, 남의 십자가: 우리는 정말 다를까?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우리는 종종 **'나의 십자가가 남의 십자가보다 더 무겁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마치 제가 겪는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특별한 것처럼 느끼는 거죠. 다른 사람의 아픔은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며, 나의 깊은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 연민'**의 한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착각에 빠질까?
우리가 이런 착각에 빠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경험의 주관성: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에 그 강도를 가장 잘 압니다. 하지만 남의 고통은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이기에, 그 깊이나 무게를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마치 통증이 있는 사람은 그 통증을 가장 잘 아는 것처럼요.
- 비교의 한계: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교를 하지만, 고통은 객관적인 척도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고통은 물질적인 형태일 수 있고, 어떤 고통은 정신적인 아픔일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고통은 더욱 개인차가 크죠. 그렇기에 '나의 고통이 더 크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 자기 보호 본능: 때로는 자신의 고통을 특별하게 여김으로써, 그 고통을 감당할 이유나 정당성을 찾으려 합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이 정도쯤이야' 하는 식의 자기 위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공감의 어려움: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완벽하게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고통을 100%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고통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무게'가 아닌 '고통' 그 자체
하지만 이러한 착각은 때로 우리를 고립시키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십자가는 그 사람에게 가장 무겁고 힘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바위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십자가가 더 무거운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십자가의 무게를 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 자체를 인정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슬픔과 아픔은 고유하며, 그 사람에게는 전부입니다.
나의 고통만큼이나 타인의 고통 또한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짐을 덜어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짐을 짊어진 사람의 옆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